내 방에 들어와 가만히 서 있는 경우가 가끔 있다. 뭘 하려고 들어왔는데 들어오며 잠깐 딴생각하는 사이에 정작 하려 했던 일이 기억이 나질 않아 우두커니 서 있게 되는 경우이다.

그 외에도 무슨 말을 하려고 생각해 두었는데 잠시 시간이 지나는 사이 갑자기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생각이 안 나 애를 먹는 일도 있고, 특히 단어나 이름이 생각이 안 나서 "그거 있잖아 그거...!"만 반복할 때도 있다.
과거 일이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 일은 말할 필요도 없다.
기억이 좋은 사람이 있고 나처럼 잘 잊어버리는 사람도 있지만 누구나 모든 걸 기억하지는 못한다. 감정도 마찬가지로 오래되면 상실의 과정을 겪게 된다. 너무 분하고 화가 나서 그때는 잠을 이루지 못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차 잊히게 되고 나중에는 내가 그때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조차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좋은 기억도 예외는 아니다. 쓰고 싶은 데 쓰라고 아내에게 통 크게 1,000만 원을 입금해 주었을 때 아내는 몹시 기분 좋아하며 '앞으로 더 잘해야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도 않아 저녁 밥값에 커피값까지 부담시킨다며 크게 감정이 상하기도 하는 게 사람이다.
그러나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인간이 기억이나 감정의 소멸 과정을 겪게 된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성장해 가며 마치 컴퓨터처럼 모든 일이나 그때그때의 감정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게 된다면 과연 온 정신으로 제대로 살 수 있을까? 인간의 기억력이 아무리 좋아도 컴퓨터를 따라갈 수 없고, 그에 더해 이제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AI가 더 합리적인 판단과 고급 정보를 내놓으며 인간의 고유한 지적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현재 인간의 뇌에 있는 기억, 성격, 자아 등 모든 정신적 정보를 컴퓨터나 로봇 같은 인공적인 매체로 완벽하게 옮기는 가상의 기술인 마인드 업로딩(Mind Uploading) 등 디지털 영생(Digital Immortality)을 꿈꾸는 기술들이 연구되고 있다. 먼 훗날에는 '아바타'나 유명한 애니메이션인 '공각기동대'에서 보는 것처럼 나의 의식이 기계 속에 들어가 완전한 기억을 누리며 고통 없이 영원히 살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세대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며 지금은 인간으로서 현생을 살아야 하고, 또 그 미래의 인간들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하며 살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그전에 먼저 지구가 두 쪽이 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만약 전지전능한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면 이렇게 우리의 기억에 한계를 두고 또 늙어 죽도록 만든 것에 대한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봐도 개체의 생존과 안녕을 위해 최선의 방향으로 진화해 온 결과물이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일 것이다. 비록 진화의 끝은 아닐지라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들도 있겠지만, 나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다 기억하지 못하고 많은 것을 잊게 되며, 또 시간의 흐름에 따라 늙고 결국 죽게 된다는 것에 대해 경이로움을 느끼곤 한다.
누구나 본능적으로 고통을 피하려 하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종말은 누구에게나 찾아오기에, 돈과 권력, 인간이 바라는 모든 것을 거머쥔 독재자도 결국 머지않아 모든 것을 내려놔야 하며, 불구와 가난으로 평생 고통받던 사람들도 결국은 끝을 맞이하게 된다.
너무도 공평하다.
누구도 억울할 것 없다.
절대 권력의 정점에 섰던 중국의 진시황이 누구도 꿈꿀 수 없는 호화로운 삶을 살았던 것에 감사하고 미련 없는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했던가...?
나의 외할머니는 검소하게 사시며 나중에 지병으로 고생하셨지만 어느 날 하늘에서 풍악 소리가 들린다는 말과 함께 평안히 돌아가셨다고 한다.
자연은 생성과 소멸의 연속이고 우리 또한 자연의 일부이다. 어찌 보면 나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그 이면의 질서 속에서 결국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나, 만물제동(萬物齊同)을 주장한 동양의 일원론자 장자의 생각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고통이 없다면 행복이라는 개념도, 어둠이 없다면 빛이라는 개념도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고통 없이 행복만 존재하는 천국은 성립될 수 없다.
결국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원효대사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에 공감하며, 행복도 불행도 내 삶의 징검다리 정도로 생각하고, 대자연의 티끌만도 못한 존재로서 모든 것에 대해 보다 겸손하고 유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싶다. 물론 희망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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